John Hus
MainBackgroundOppositionBeliefsCouncilImprisonmentMartyrdomLinks

반 대

종교에 반대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서 후스는 또한 그가 본 악습, 특히 종교 사회에서 본 것에 관하여 담대히 반대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임재를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분을 접촉함으로 알 수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1404년 그는 꾸며낸 기적들을 반대하는 소책자를 출판했습니다. 그는 성직자들의 탐욕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임재에 관한 물질적인 표징을 구하기를 그만두고 그분의 영속하는 말씀 안에서 그분을 찾으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들에게 주님의 임재를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분을 접촉함으로 알 수 있다고 권고했습니다. 후스는 삼자 대화(Trialogus)을 포함한 위클리프의 글을 보헤미아 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더 후스는 위클리프가 믿고 선포했던 것과 같은 입장을 취했습니다.

종교로 부터 반대를 받다.

성직자들은 위클리프에게 그랬던 것처럼 후스에게도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후스가 성직자들의 악습을 폭로하는 것을 비난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레고리 12세와 알렉선더 5세라는 두 명의 교황이 있었습니다. 보헤미아 성직자와 보헤미아의 주교는 그레고리와 뜻을 함께 했습니다. 후스와 체코 사람들과 프라하 대학은 알렉산더를 지지했습니다. 후스는 성직자들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뜻을 함께 하고 사람들이 카톨릭 교회에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을 반대하여 말하는 대변인이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의 반대는 강렬해졌습니다. 1410년 교황 알렉산더는 위클리프의 글을 불태우라는 교황의 교서를 내렸습니다. 보헤미아의 주교는 후스의 나라에서 그 교서를 집행하려 했습니다. 주교는 200권을 모았습니다. 후스는 위클리프의 가르침을 정죄하는 이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교는 그의 가르침을 검토하는데 관심 없어 검증을 거치지 않고 책들을 불태웠습니다. 후스는 설교를 그만두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파 문

후스는 교황의 교서를 주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1411년 알렉산더의 후계자인 (아마 알렉산더의 살해자일수도 있는)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공식적으로 파문되었습니다. 위클리프의 책을 태우고 이어서 후스를 파문하자 대중들이 항의했습니다. 후스의 베들레헴 예배당을 없애려고 교황은 프라하의 주교에게 정해진 교회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말씀을 전할 수 없게 하는 권위를 주었습니다.
후스는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단호히 양보하지 않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나의 목적은 하나님이 내게 알려 주신 진리, 특별히 거룩한 성경의 진리를 죽기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영원히 전능하게 서있으며 영원히 전능하며 남아있기 때문이다. [3]

사망한 교황인 알렉산더에 관하여 후스는 그가 “하늘에 있는지 지옥에 있는지” 단언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4] 그는 “복음서들과 서신서들과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을 핍박” 했던 이가 어떠한 교황인지 공개적으로 물었습니다.[5]

파문 명령은 아무도 후스에게 먹을 것과 마실것과 인사나 담화나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나 환대를 못하도록 했습니다. 후스는 그의 앞선 지도자처럼 대단히 반응했습니다.

...후스는 그의 친구들에게 그리스도 자신도 악인과 같이 파문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분을 위하여 우리가 재산과 친구들과 세상의 존귀와 우리의 하찮은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잃겠는가?...형편없이 사는 것보다는 잘 죽는 것이 낫다.

성도들에게서는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예와 그의 구원은 위안과 용기를 주기에 충분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헤롯과 빌라데는 진리를 정죄하고 죽였지만 그분은 무덤에서 일어나 다른 열 두 명의 전도자들을 공표했다. 그가 말하기를 “어떤 두려움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떼어 놓을 수 없으며 죽음도 그러하다”. 그분을 위하여 우리가 재산과 친구들과 세상의 존귀와 우리의 하찮은 생명을 잃어버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잃겠는가?...형편없이 사는 것보다는 잘 죽는 것이 낫다. 우리는 사형을 받지 않으려고 감히 죄를 범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을 은혜 안에서 마감하는 것이 고통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진리가 최후의 승리자이다. 죽임 당한 이가 이기는데 이는 “죄가 그를 지배하지 않으면 어떠한 역경도 그를 손상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 안에서 그는 계속 말했다. “적그리스도의 화살”은 그를 두렵게 하지도 않았고 “프라하의 선민“을 두렵게 할 수 도 없었다. [6]

후스를 따르는 이들에게도 또한 음식과 음료와 옷과 잠잘 곳 등등을 제공하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프라하 도시 전체가 그러한 봉쇄를 겪지 않게 하기 위해, 후스는 18개월 동안 도시를 떠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프라하로 메세지를 보내 그가 여전히 복음을 전파하고 마을과 성곽과 밭 - 어느 곳이던 허가된 곳 - 에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며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 배 경 | 반 대 | 믿 음 | 공의회 | 투 옥 | 순 교
찬 송 | 각 주 | 링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