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H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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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믿음

1413년 그가 프라하에 없는 동안, “교회론”(De ecclesia)라는 놀라운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프라하로 보내져 베들레헴 예배당에서 읽혔습니다. 이 책은 그가 위클리프의 가르침에 의존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상 어떤 이는 이 책의 처음 10 장(章)은 위클리프의 책에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말했습니다. 쉐프(Schaff)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고 인용했습니다. :

…교회는 미리 예정하심을 받은 모든 죽은 자나 산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로써 몸이나 회중이다...로마 교황이나 주교들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는 주교나 교황 없이 존재할 수 있고 사실상 수 백년 동안 주교는 없었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주신 직분에 관하여, 후스는 그리스도가 그분 자신을 반석이라 하시고 교회가 그분 위에 세워질 거라는 것을 확증했다...베드로의 분명하고 명확한 관점 안에서, “반석-페트라(Petra)-은 베드로-페트로(Petro)-에게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참 반석인 나를 증거 하는 자라’. 내 자신인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말하길, 로마 주교는 콘스탄틴이 그를 교황으로 삼기 전까지는 다른 주교들과 동등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는 권위를 남용하기 시작했다. 무지와 돈을 사랑함을 통해 교황은 어긋날 수 있고 어긋나왔고 어긋난 교황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이다. 타락하고 이단적인 교황은 계속 있어왔다.
디 이클레시아 의 두번째 부분에서 후스는 알렉산더의 벌스(Bulls of Alexander)와 요한 23세를 반기독교인이라고 선언했고 그러므로 복종하지 말라고 했다. 대성당과 교구와 수도사 교회 이외의 장소에서는 보헤미아에서 전파하는 것을 금지하는 알렉산더의 칙령은 복음에 반대되는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가 집안에서와 바닷가에서와 회당에서 전파하시고 그의 제자들에게 온 땅으로 가서 전파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을 하거나 세속적인 무력에 호소하는 교황의 권위를 부인했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따르려 했다면 그는 그의 적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니.”라고 말했어야 한다...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는 그리스도가 문둥병 자들을 보낸 성직자들에게 있지 않는 만큼 이 세상의 사람에게도 없다. 문둥병 자들은 그들이 성직자들에게 가기 전에 깨끗해 졌다.
교황과 보이는 교회의 무오성을 부인하고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제사장직분의 성직자의 권위를 제쳐놓고 후스는 서양 기독교계에서 용인된 이론과 관계를 끊었다. 그는 중세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진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생각들은 보헤미안 개혁자들이 발상해낸것은 아니다. [7]

후스는 종종 그가 요한 위클리프를 의지하고 있음을 자인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서 보헤미아는 영국이라는 축복받은 땅에서 너무나 좋은 것을 많이 받았다.”라고 감사했습니다.” [8]

스핑카(Spinka)에 따르면, 후스의 교회에 관한 관점은 “법인으로서의 교회는 참으로 해를끼치는것인데 이는 사도 바울의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함의 관점이

성경은 요한 후스가 모든 것을 시험하였던 표준과 기준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주의에는 해를 끼치던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9] 그는 성인들에게 기도하는것과 면죄의 효능, 예를 들어 성직자들이 죄를 용서하여 주는 그러한 실행들을 반대했습니다. 성직을 사고 파는 성직 매매를 비난했습니다. 그는 또한 죄인의 참된 필요는 죄에 대한 참된 회개와 비통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면죄부의 판매를 정죄했습니다.

수세기 동안 의문없이 받아들인 교회의 교리나 실행들을 감히 비판하지 않았다면 후스는 아마 그의 침상에서 평안하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후스는 ‘성경은 무엇이라 하는가?’ 라고 물음으로 대경실색하게 했다.

여기서 다시한번 후스는 성경으로 그들의 진리와 정당성을 시험했다. 너무나 오랫동안 사람들은 교황이나 교회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던 진실이고 극히 신성하다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져왔다. 후스는 ‘성경은 무엇이라 하는가?’ 라고 물음으로 대경실색하게 했다. 그 후 그의 적들은 ‘이단’이라 그를 불렀다. [10]

후스의 또 다른 업적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여섯 가지 오류”라는 논설입니다. 이 오류중 첫 번째는 “하나님의 몸을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제정신이 아닌 성직자들”의 허풍이었습니다. [11] 후스는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을 의미함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라 불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논설에서 후스가 언급한 다른 오류는 “믿는다”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길 성직자들은 사람들에게 마리아와 성인들과 교황을 믿으라고 명령한다고 했습니다. 후스는 우리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후스가 지적한 또 다른 오류는 로마 교회의 성직자 제도 내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해 복종하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후스는 그리스도인은 오직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합할 때만 지위가 높은 사람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후스 자신은 그가 말씀을 전파하지 말라는 교황의 명령을 받은 후에도 베들레헴 예배당에서 계속 말씀을 전파할 때 이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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