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츠 공의회

콘스탄츠 공의회

결국 후스는 독일의 황제에 의해 콘스탄츠 공의회로 소환되어 그의 믿음과 행위들을 변호했습니다. 1414년 10월 11일, 그는 콘스탄츠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프라하를 떠나기 전에 다음과 같은 공지를 보냈습니다 :

나 후시네츠의 요한은 보헤미아 전체에 공고하노니

후시네츠의 요한은 보헤미아 전체에 공고하노니 … 진리를 세우기 위해 증인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콘스탄츠 공의회 앞에서 진리를 세우기 위해 증인대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만약 교황이 그곳에 온다면 교황과 회의의 성직자들 앞에서이다. 누구든지 나의 잘못이나 내가 이단적인 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면 앞서 말한 회의 앞에서 그 자신의 이름으로 나를 고발하러 올 준비를 하라. [12]

콘스탄츠 사람들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에서 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그분은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들이다. 그분은 온 세상의 왕이시고 우리는 보잘것없이 허약한 자들이다...그분이 고난받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고난받지 아니하겠는가?...확실히 그분의 도우심으로 그분의 신실한 종은 견고하게 남아 있다면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내가 큰 두려움 없이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그분이 허락하시기를 힘써 기도해 주시오. [13]

그 해 11월 4일 그는 콘스탄츠에 도착했습니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교황 요한 23세는 세 명의 경쟁하는 교황중 한 명이었으며 그 회의의 주도자로서 로마 제국 전체와 전 카톨릭 교회를 대리하려고 했습니다. 참석자들은 삼만 마리의 말을 타고 도착한 삼만 명의 교수들과 108명의 백작들과 200명의 남작들과 27명의 기사들과 오락을 위한 500명의 음유 시인들이었습니다. 밀러는 이 모임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

1414년 11월 5일부터 삼년 반 동안 이 타락한 사람들은 조용한 고대 도시인 콘스탄츠를 그들의 뻔뻔스러운 악함으로 채웠다. 그 당시 낮처럼 공개되어 있던 것을 쓴다면 우리 역사의 페이지들을 더럽힐 것이다. 소위 성부들이라 불리는 이들의 더러움과 대담한 불경과 위선을 생각하고 그들의 무자비한 냉정함에 아무 말 하지 않을 때 심장이 떨린다... [14]

공의회의 목적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로, 로마 교회의 분열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다수의 교황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둘째로, 교회를 개혁하려 했습니다. 셋째로는 모든 이단들을 왕국에서 추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은 이루어졌습니다. 교황이 온 교회의 회의에 복종해야 한다고 처음으로 선포했습니다. 그 후 세명의 경쟁하는 교황들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로운 교황인 마틴 5세가 뽑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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